1858년 영국 왕립통계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나이팅게일! 맞습니다 우리가 백의의 천사로 알고 있는 그 나이팅게일입니다.
그녀는 크림전쟁(1853~1856) 당시 38명의 성공회 수녀들의 도움을 받으며 슈코더르(스쿠타리)의 야전 병원에서 초인적인 활약을 보였습니다. 흔히 나이팅게일 하면 고통받는 부상병을 돌본 봉사자를 연상하지만 이 시기의 나이팅게일은 유능한 행정가이며 협상가였습니다. 그녀는 관료주의에 물든 군을 설득했고, 병원에서 쓰는 물건들을 세심하게 조사했으며, 무질서한 병원에 규율을 세웠습니다. 그로 인해 환자의 사망률은 42퍼센트에서 2퍼센트로 뚝 떨어졌답니다. 이러한 기록적인 사망률의 개선은 바로 그녀의 통계학자로서의 역량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85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사망하는 이유를 부상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팅게일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전쟁터에서 직접 부상병을 보살피며 그들의 사망원인은 부상이 아닌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군 위생 개선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한편 열악한 보건위생 때문에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지원을 해달라는 편지를 각종 통계자료를 만들어 제시하며 끊임없이 보냈으며, 결국 영국의 지원을 받게 됩니다.
그녀의 수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만든 도표와 차트는 영국 왕립통계학회가 인정하는 도표와 차트 형식을 최초로 활용한 것입니다. 이를 장미도표 (Rose Diagram)이라고 부릅니다.
나이팅게일은 통계를 잘 활용하면 인류의 생활은 개선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법률과 정부의 부적절함, 정치체계의 무능함, 사회를 이끄는 자들의 답답한 몽매함'을 오직 통계 연구로만 바르게 이끌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를 위해선 모든 사람들이 통계법칙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담이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나이팅게일의 별명이 유독 '백의의 천사'로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녀를 칭하는데 자주 올라오는 명칭은 '등불 든 여인'(The Lady with the Lamp)입니다. 타임지에 그녀가 밤마다 등을 켜고 병사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보도된 별칭이 언론에서 전파되며 유명세를 탔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녀의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과 통계학적 지식, 뛰어난 협상력과 실천이 세상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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